합신칼럼

[Vol 34-2] 바른 실천(Ortho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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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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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유 교수, 선교신학

 

   지난해와 올해는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도르트레흐트 회의와 신경을 중심으로 개혁신학의 의미와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간이었다. 다양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헌신적인 연구와 고민의 결과물인 ‘도르트 신경’이야말로 개혁신학의 정수를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르트 종교회의는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시키고 진리를 파괴하려는 신학적 공격을 잘 막아내고 마침내 바른 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매우 뜻 깊은 회의였음에 틀림없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와 신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진리를 사수하며 전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바른 신학(orthodoxy)이 없이는 바른 교회가 존재할 수 없고 바른 실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신학을 위해 생명을 바쳤던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아 우리도 바른 신학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한다.

 

   하지만 지난 한 해를 보내며 필자가 가졌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이 바른 신학 정립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반해 바른 실천(orthopraxis)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점이다. 바른 신학이 바른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바른 신학은 자칫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 있는 위험성이 매우 크다. 바른 신학이 성경적 진리의 수직적인 차원(vertical dimension)에만 머무른 다면 헬라 철학자들이 강조했던 단순한 지식(앎)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 개혁신학이 교리를 중심으로 한 바른 신학을 강조함으로서 성경의 진리를 지키고 보수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중세 개혁자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바른 실천이라는 주제를 간과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도 조금만 방심하면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서구신학의 고전적 이원론에 쉽게 함몰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미국을 제외한 서구신학이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고전적인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킨 과오를 냉철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 개혁자들(reformers)은 현실의 문제들과 싸웠고, 변혁(transformation)을 위해 목숨을 건 자들이다. 성경의 진리는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horizontal dimension) 모두를 강조하고 지지한 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교 개혁가들은 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 뿐 만 아니라 바른 실천을 위해서도 목숨을 건 자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날 한국 교회가 사회적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바른 교리가 결여되어서 라기 보다는 바른 실천이 결여되었기 때문 일 것이다. 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열정과 노력에 비해 바른 실천을 가르치는 열정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 이후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독일 교회들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사변적인 교리와 정통주의에 함몰되어 있었고, 바른 신학은 생명력을 잃고 화석화되어버렸다.

 

   독일의 화석화된 교회와 신학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이 바로 필립 스페너(philip J. Spener)였다. 그는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에 대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도록 명령받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의 발언이 일견 과격해 보이기는 해도 그가 바라고 기대하던 신앙인의 참다운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본다. 생명력을 잃고 화석화된 죽은 교리가 아니라 생명력 있는 살아있는 교리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 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20% 정도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교인이라고 한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 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 탐구센터’가 지난 10월 연간 2회 이하 교회출석자 8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가나안 교인들이 왜 교회에서 떠났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65.8%가 “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중복 질문에서는 47.9%가 “목회자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서”, 54%가 “목회자가 욕심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특히 재출석할 경우에는 '신앙과 생활이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 가고 싶다'는 응답이 63.7%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 교회가 지닌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바른 교리에는 정통한 한국 교회가 바른 실천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교리에 능통한 자가 저절로 실천에 능통한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천은 현실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번뇌를 통해서만 가능해 진다. 본문(text)을 현장(context)에 적용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바른 실천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삶의 현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른 신학을 견지한다고 해서 저절로 바른 실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른 신학을 토대로 삼아야만 바른 실천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른 신학이 저절로 바른 실천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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