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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4-1]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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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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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 교수, 조직신학

 

 

    오늘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은 급진성을 지닌 일부 소수자의 사상적 편향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 현상이 점차 확장되어 가고 있는 기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 신문의 칼럼에 따르면, 우리는 소위 일베로 회자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와 ‘워마드’라는 인터넷 사이트로 대표되는 남성과 여성 간 ‘젠더(Gender)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혐오의 양상은 서로를 가리키는 표현들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여성을 가리켜 ‘김치녀’(뜻: 본인은 할 바를 하지 않은 채 남자를 하대하고 도구처럼 생각하며 권리만으르 주장하는 개념 없는 여자)라고 부르거나, 남자를 가리켜 ‘한남충’(뜻: 벌레 같은 한국 남자)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것이다.

 

    2019년 2월 16일자 어느 일간지는 보도하기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포털에 시정을 요구한 혐오 표현이 2014년 280건에서 2016년 1983건으로 급증하였으며, 특별히 여성 비하 표현은 6건에서 238건으로, 남성 비하 표현은 3건에서 476건으로 늘어났다. 불과 2년 사이에 나타난 증가세는 남성과 여성을 향한 혐오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향한 혐오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크게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서로를 향해 혐오감을 표현하는 일과 관련하여 어느 편에서 먼저 시작한 것인지를 밝혀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보다는 혐오의 표현이 극단적 행동으로 나타나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당면한 문제이다. 워마드에 속한 여성들은 소위 ‘미러링’이라는 활동을 통하여 여성 평등을 위한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한다. ‘미러링’이란 ‘여성 혐오의 표현을 반대로 바꾸어 남성에게 돌려주는 의도적인 표현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미러링’은 혐오 표현의 책임을 남성에게 돌린다. 사실 굳이 페미니즘의 관점을 언급하지 않아도, 역사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남성과 동등한 수준에 이르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다는 통상적인 인식에서 볼 때, 남성과 여성의 처지를 바꾸어 여성이 여성으로 어떠한 차별을 받는지를 일깨우기 위한 미러링은 일종의 풍자로 변화를 이끄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남성 혐오와 관련하여 ‘미러링’이라는 것은 남성의 잘못을 그대로 모방하여 여성이 남성에게 보복하는 것이 될 때에 소위 남성 혐오의 ‘미러링’의 방식은 여성 혐오를 낳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비유하건데, 길에서 대변을 보는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고자 할 경우, 이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거울을 앞에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사람의 맞은편에서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그 오물을 이 사람에게 투척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교정과 개선을 위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혐오와 증오의 반발을 낳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따름이다.

 

    워마드는 2018년 7월 서울 혜화역에서 홍대 누드모델 몰카 촬영과 관련한 경찰의 수사가 여성에게 불리하도록 편파 수사를 하였다고 비난하는 시위를 이끌었다. 시위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주최 측 추산에 따를 때 7만에 이른다. 모인 자들이 시위에서 외친 표현들은 남성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조차도 시위에 모인 이들은 ‘문재인 재기해’를 외쳤다. ‘재기해’는 남성인권연대의 상임대표였던 고(故) 성재기씨의 이름을 따서 ‘재기처럼 하라’는 뜻을 표현한다. 남성인권연대라는 남성 역차별, 여성운동 내부의 부조리, 사회의 남성성의 몰이해를 비판하고, 허위 신고로 인한 성폭생 무고자가 있을 경우 이들을 변호하는 등의 일을 목표로 하는 단체이다. 그가 하나의 퍼포먼스를 위해 2017년에 한강 투신을 했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던 일을 들어서 ‘재기처럼 한강에 투신하라’는 조롱과 비방의 뜻을 담은 것이 ‘재기하라’이다. 대통령이 경찰의 수사는 피의자가 남성인가 여성인가에 따라서 편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견해를 표현하자, 이들은 대통령에게도 남성 혐오 표현을 외쳤던 것이다.

 

    극단적인 남성 혐오 행동들은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남성 우월적인 가부장적 구조에 갇혀 있다는 판단을 근거로 남성 일반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데까지 나가는 반(反)사회적 경향을 보인다. 2019년 2월 10일자 영국의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한 극단주의 페미니스트는 임신한 아이가 남자라는 이유로 아이를 낙태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남성 혐오를 보이는 여성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남성 혐오의 이유에 대해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행하는 많은 범죄 행위들을 언급한다. 곧 극단적 남성 혐오 행동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죄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혐오하며 배척하는 죄악을 또한 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남성 혐오, 여성 혐오의 현상을 대처해야 할까? 이에 대해 올바르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바로 남성 혐오, 여성 혐오 현상이 본질상 죄로 인하여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기독교인의 대처는 성경을 통해서 남성 또는 여성 혐오 현상의 성격을 깨닫고 그것의 죄악을 벗어날 교훈을 성경에서 찾아 적용하는 것이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도 여성을 혐오하거나 반대로 남성을 혐오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이 가부장적 문화 안에서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여성 혐오적이라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매우 잘못되었다. 흔히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의 말씀을 들어 여성을 가부장적 구조 아래 남자에게 종속되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25절)는 말씀은 남편과 아내가 권위와 종속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임을 교훈한다. 아내는 남편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목숨을 내어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여성 혐오와 같은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결코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차별 없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차별 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이다. 더 나아가 여성은 그리스도와 교회로부터 존중을 받았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 죄인인 그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르치셨으며(요 4:9-10),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는 손길에서 구원하여 주셨고(요 8:9-11), 마리아와 마르다를 가르치고 그들의 선생이 되어 주셨다.(요 11:28) 교회는 처음부터 여성들을 제자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행 8:12; 17:12), 복음 선포의 귀한 일꾼으로 삼았다.(롬 16장; 빌 4:3) 성경은 여성 혐오를 정당화할 어떤 변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여성의 인권마저 무시했던 당시 주변 문화들과 다르게, 성경은 도리어 남녀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교훈을 기초로 여성의 정당한 인권을 보장한다.

 

    성경을 읽을 때, 여성 혐오의 현상이 표현되어 있는 것과 그 현상을 인정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우리와 마찬가지로 원죄에 따른 죄성을 가진 자들이었고, 이방 세계의 죄악의 영향을 입고 있었으므로, 여성에게 죄악을 범하는 행위들을 보였다. 이를테면, 한 레위인의 첩을 강간하여 살해한 사건과 같은 일이다.(삿 19:25-29) 성경은 이 행위를 제시하고 있지만,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절실한가를 일깨우는 교훈을 준다. 만일 성경에서 여성 혐오의 근거를 찾으려면, 어떤 한 구절을 성경에서 찢어내어 문맥을 벗어난 해석을 하여야 한다. 아울러 극단적 남성 혐오주의가 남성이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라면, 성경은 결코 남성 혐오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져야 한다고 교훈하지도 않는다. 앞서 본 것처럼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여야 하는 책임을 그리스도에게서 배워 실천할 것을 교훈한다.

 

    그리스도인은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의 근본적 뿌리가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는 말씀에 밝혀져 있음을 보아야 한다. 타락한 남성은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범죄를 행하여 왔으며, 이제 함께 타락한 여성은 이에 대하여 남성 혐오라는 사회적 범죄로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처는 성경의 교훈을 살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이면서 각각 다른 역할을 통해 성경의 복된 가정과 교회를 이루고, 사회 속에서 신자의 생활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