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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4-3] "낙태법 폐지"에 대한 개혁신학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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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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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교수, 조직신학
 
 
 
    이런 근본적 문제에 있어서는 개혁신학적 입장이나 정통 루터파 신학의 입장이나 복음주의적 입장의 차이가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이를 이런 문제에 대한 정통파 교회의 입장이라고 해도 된다. 정통파 교회는 항상 모든 문제에 대해서 오직 성경이 말하는 바를 최종적 결론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입장을 유지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은 그/그녀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이제 막 세포 분열을 시작한 단계의 인간 생명이나 그것이 좀 더 자라 소위 “태아”(fetus)가 된 상태의 인간 생명이나 막 태어난 아기 상태의 생명이나 다 자란 어른의 생명이나 나이가 너무 많아 숨 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인간 생명도 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인간을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성경적 입장에서만 우리는 “인권(人權)”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은, 비록 인권에 대해서 장황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결국 인권을 해치는 것이 된다. 인권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과 관련하여 서서(vis-à-vis God) 그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를 향하여 나아 갈 때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낙태가 옳지 않음이 보편적 원리로만이 아니라 삶의 실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 세상이 낙태를 일반적으로 행할 때에라도 교회 공동체는 태속의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는 ‘살리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여러 이유 때문에 몰래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잘 보살필 수 있는 시설을 많이 만들고 유지하는 일까지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세상을 향해서 생명 운동에로 나아오라고 말할 때 우리가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이 세상 속에서 태속에 있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며, 아주 이른 단계의 인간 생명을 존귀히 여겨 수정란과 태아의 인권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그런 이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일에 우리들은 앞장 서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필요한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하고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지금 제정된 그 법이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려 하므로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여) 태속의 아이들도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천부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여서 지금의 실정법이 천부의 인권을 무시하는 잘못된 법이라는 것을 여러 방도로 세상에 알리고, 여러모로 설득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 문제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논의할 때는 얼마 전에 제정된 ‘필요한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법이므로 우리 사회가 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는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논의와 그런 노력이 행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이 세상의 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널리 펴져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이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태속의 아이를 귀하게 여기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설득해야 한다. 여러 방도를 다 사용해서 결과적으로 낙태를 하지 않도록 하며, 낙태를 일반화하지 않도록 하는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이미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한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우리들이 앞장서서, 얼마 전에 제정된 현재의 실정법이 허용하고 있는 낙태도 적어도 우리들은 하지 않으려고 해야 한다. 실정법이 허용하니 낙태하는 데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도무지 이 사망 운동을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때 제일 어려운 것이 기독교 병원들과 그리스도인 산부인과 의사들이다. 이 분들이 낙태 수술을 하지 않아도 산부인과 의사를 할 수 있도록, 병원이 유지될 수 있도록, 낙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 때문에 당하는 법적인 어려움에서 보호 받을 수 있게 많은 돈을 모아서 이런 병원과 의사 선생님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 돈도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선언만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비겁한 것이며,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무력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에는 그런 선언이라도 지속적으로 우리의 존재로 하야 한다). 이런 주장과 선언은 지금 개정된 실정법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니,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리해야 한다.
 
 
     (2) 현재의 실정법에서 미끄러운 경사길을 따라 이 사회가 더 많은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다시 개악하는 방식으로 개정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계속해서 신경 쓰면서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이 정도만 허용한다고 하지만, 이 법의 정신을 따라 나아가면 이 세상 법이 얼마나 무도(無道)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우 안타까운 말이지만 현재의 수준에서 더 개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많은 법률가들과 정신 차린 국회의원들이 계속 노력하게끔 많은 국민들이 깨어서 노력해야 한다.
 
 
    (3) 그 노력에 더해서, 우리나라의 실정법이 태속에 있는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한번 개악된 것을 다시 돌이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간은 천부의 가치를 태속에 있는 그 상태로부터 가지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홍보하여 지금 허용한 이 법이 개악된 것임을 생각하고서 ,결과적으로 태속에 있는 생명까지를 존귀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법을 다시 바꾸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어쩌면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도록 일부 사람들이 단결하여 지난 수 십년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하려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다 같이 협력하여(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야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실정법이 있게 될 것이다.
 
 
    (4) 그러나 (그런 일도 거의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그저 천부의 생명이기에 태속의 아기를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하게 되어 우리 사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폐하고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다시 제정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런 상황은 겉으로만 하나님이 뜻에 가깝게 가는 법을 가진 상황이지 그 내면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는 상황은 아니기에, 우리들은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있게 되는 상황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정통파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따라 하고 있는 생명운동은 그저 외적인 생명만을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게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진정한 생명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 때에야 태속에 있는 인간 생명을 위해 하는 일이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여 행하는 “영적인 선”(spiritual good)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 운동은 그저 외적인 생명만 주시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태속에 있는 인간 생명도 귀히 여기며 그들에게도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이 있기를 바라고 기도하며 애쓰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