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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5-1] 기독 청년과의 복음적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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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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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교수, 기독교교육학

 

    주변 사람들과 청년에 관해 대화하면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말보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땅에서 청년으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 너무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청년이란 단어를 33번이나 사용하면서 청년 문제를 국정 과제의 중심에 두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흘렀지만, 청년들의 삶의 질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청년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을 지원하는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IMF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들은 성공보다는 좌절을 경험했고, 도전하기보다는 현실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은 마음을 닫았고,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다.
결혼하기에는 포기할 것들이 너무 많아 아예 결혼마저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이들을 가리켜 N포세대, 달관세대, Z세대로 부른다. 또는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기 위해 살아가는 욜로(You Only Live Once)족으로 부른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나 타인에 대한 희생 대신 당장 자신이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최우선으로 살아간다.
 
    이런 상황은 기독청년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일반 사회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이유가 시간이 없고 바빠서라는 답이 절반을 차지한다. 팍팍한 학업과 아르바이트에 교회에 올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들이 가진 시간을 모두 투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바쁜지 즐기며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없다. 그래서 단타성 오락물을 즐긴다. 5분 이내에 승부를 보는 유튜브를 즐겨 보고 대리만족을 주는 콘텐츠를 즐긴다.
 
    이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민주시민으로 교육을 받고 살아왔다. 그런데 교회는 상식을 넘어서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연령중심과 남성중심의 권위주의, 성직자중심의 교권주의, 교단법을 어기면서도 감행되는 세습, 목회자의 성범죄나 거짓말을 치리하지 않는 교회, 갈등 속에 폭력이 난무하는 교회의 모습은 청년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청년들이 바라본 교회의 모습은 잿빛을 넘어 깜깜하다. 청년들은 더 이상 교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리기보다는 아예 무관심하고 하찮게 여긴다.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지만,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지칠 대로 지쳐있는 청년들의 회복을 위해 교회는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다. 오늘 교회 안의 청년들에게도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 청년들의 목소리나 의견, 주장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일자리만이 아니다.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솔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 그들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누군가다.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신앙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부딪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이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선택권을 주는 상대에게 신뢰를 준다. 풀어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을 양육하려면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헌신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교회가 이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에게 헌신을 요구하면 청년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부속품 정도로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회가 성도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존의 외형을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 청년들을 동원해서 일을 시킬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에게 시급한 것은 부역이 아니다. 그들을 복음 안에서 양육하는 것이 먼저다. 신앙의 기초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영적 양육은 뒷전에 두고 이들을 그저 헌신을 빙자한 착취에 동원하고 써먹는 일에만 관심을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는 청년들이 탈진하고 교회를 떠나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셋째, 복음의 풍성함을 맛보게 해야 한다. 요즘 교회마다 교회를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을 붙잡아 교회 안에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은혜의 풍성함을 맛보게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교회를 떠나면 저주받는다는 식의 공포를 조장하는 것을 본다. 질이 낮은 하등종교일수록 공포로 통제한다. 조직화하고 공포를 조장해서는 젊은이들을 붙잡을 수 없다. 자라면서 자신에게 선택권이 생기는 순간 교회를 떠나는 결정을 내리는 젊은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진정한 복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신앙생활에 건강한 자양분이 되는 상식적인 설교와 성경공부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리공부가 아니라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주는 대화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하며 말씀으로 안내하는 멘토링이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낸 답을 강요하기보다 자신 스스로 이해와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가 담임하는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과 대화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들이 실제 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을 배우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에 대한 박탈감을 표현했다. 자신들에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 교회는 이들의 진정한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넷째, 청년들만의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자신들이 기획하는 일에 교회가 과감하게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청년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 안에 갇혀있는 신앙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살아가는 일터와 삶의 현장 속에서 살아낼 수 있도록 이들의 자존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성경적 가르침이 필요하다. 이들이 실제 부딪히는 부채, 주거, 최저임금, 비정규직, 교육, 결혼, 복지, 그리고 통일에 관한 복음적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공간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예배와 프로그램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섯째, 청년들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소통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복음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지만, 전하는 방식은 대상에 따라 달라야 한다. 만나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방식을 선택했던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 이른바 소셜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세대가 갖는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실시간, 쌍방향 소통방식에 맞게 소통해야 한다. 인터넷을 비롯 SNS를 매개로한 개인주의적 문화와 감성에 바탕을 둔 개방성, 다양성, 포용성을 끌어안는 쌍방향적 소통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지표를 기억하면서 젊은 세대의 소통방식에 접촉점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교회는 현 시대의 청년들과 복음적 소통을 이루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