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Vol. 34-1]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생애』(역사적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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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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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교수, 신약신학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다. 『누가 성경을 만들었는가?』(2007), 『목회서신들의 역사적 배열』(2007) 등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도 또한 매우 오래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크게 볼 때 타티안(약 AD. 170년)이나 아우구스티누스(약 AD. 400) 등이 시도했던 "복음서들의 조화"(harmonia evangeliorum)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처음 출판된 1987년 화란 및 유럽 상황을 두고 볼 때 판 브루헌의 시도는 새로운 것이었다. 당시에는 편집사적 방법론이 대세였다. 복음서 각 권의 저자를 신학자로 보고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찾고 밝히려 한 것이었다. 따라서 "네 복음서 하나의 복음"이란 개념은 신학 담론에서 점점 멀어지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란 개혁교회(vrijgemaakt)는 CNT(commentaar op het Nieuwe Testament; "신약성경주석")라는 주석 시리즈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는 흐로솨이데, 흐레이다누스, 리델보스 등 이전 시대 화란 개혁주의 신구약학자들의 일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판 브루헌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 학자들은 신약을 다섯 단위(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공동서신, 요한계시록)로 나누고 주석하면서, 동시에 복음서와 바울서신에 대한 진지한 소개서를 썼다. 이 소개서 중 하나가 『지상의 그리스도』이다. 나머지 하나는『하나님의 아들 예수』(2014)이다. 이 두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깊은 주석의 열매였다.

 

    이 책은 예수님의 지상생애에 관심을 갖는다. 탄생부터 부활하시고 나타나시며 승천하시기까지 기간이다. 저자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일반 신자들에게 있는 필요 때문이었다. 신자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받고(행 2:36; 롬 10:9-10) 난 후에는 "과연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셨는가?" 질문을 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완벽한 전기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네 복음서의 저자들이 제공해 준 이야기에 관해 영속적인 불확실성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견고한 뿌리는 심각하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이 집필 이전 시대나 당시 또한 현대의 예수 생애사와 다른 점은 사복음서를 사료적 가치가 있는 문헌으로 본다는 것이다. 판 브루헌은 당시 로마사가들, 유대 사가 요세푸스, 랍비들, 정경 밖에 있는 외경 복음서들 등 문헌들을 소개하고 비교하며 평가한다. 이 비교를 통해 독자들은 한 눈에 복음서가 예수님의 지상생애에 대한 가장 풍부한 사료를 담고 있는 "역사"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역사를 특별한 네 명의 증인이 기록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들 네 명이 증거한 복음역사를 유일한 권위로 받았다.

 

    만일 이 네 증인의 기록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진정성 있는 문헌이라면, 하나의 출발과 결말이 있는 "역사"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네 복음서는 크고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 구조는 동일하다. 판 브루헌에 따르면, 이 구조는 이렇다(3장).

 

    갈릴리 사역-예루살렘으로 여행-예루살렘 사역- 고난-부활-승천

 

    그래서 이 책도 그 구조를 따른다. 탄생(4-6장), 갈릴리사역(7-11장),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심(12 장), 예루살렘 사역(13-15장), 고난과 죽음(16장), 부활, 현현, 승천(17장). 여기서 판 브루헌은 네 복음서 자료를 민감하게 읽으면서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부터 갈릴리에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고, 유대 지도자들과 갈등이 증폭하면서 결국 십자가 죽음을 죽게 되기까지,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여러 장소와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일들에 대한 하나의 그림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역사가가 사건을 재구성할 때 쓰는 어법이 많다. 언제, 어디서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 누가, 어떻게 그 사건에 참여했는가? 질문을 다룬다. 하지만 동시에 사복음서를 문학적이고 주해적으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많은 통찰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복음서에는 이중기록(doublet)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주기도(마 6:9-13; 눅 11:2-4)가 있다. 심지어 삼중기록(triplet)도 간혹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는다"(막 4:21; 눅 8:16 | 마 5:15 | 눅 11:33)는 말씀이 있다. 한 번은 비유를 설명하시는 장면에서(막 4:21; 눅 8:16), 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는 문맥에서(마 5:15), 세 번째로는 시대를 분멸할 줄 모르고 눈이 순수하지 않은 악한 세대에 대하여 탄식하시는 상황에서 등장한다(눅 11:33).

 

    이런 반복구절들을 복음서 주석가들은 복음서 기원의 문제나 신학자의 편집활동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예수님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말씀을 오직 한번만 했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판 브루헌은 이것이 전제의 오류임을 지적한다. 예수님은 주기도를 다양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고 교육하셨을 수 있고, 또 동일한 격언으로 여러 상황에서 교훈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유대전통은 반복을 오늘날 말하기나 글쓰기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평가했다. 이것은 복음서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네 복음서가 서로 의존적인 기록이 아니요, 각 저자가 독립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