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Vol. 34-1] 목회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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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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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배 목사, 동해참빛교회

 

 

 

    올해 2019년 1월 10일(목요일)에 면접이 잡혔다. 누군가 권유로 묵호노인종합복지관 인문학 강사 지원서를 냈다. 일주일 후 1년계약했다.

 

    목회범위를, 담임목사로서 교회 안에서 해나가는 당회장 일과 기독교인으로서 교회 밖에서 보여주는 목사품위, 이 둘로 나누고 싶다. 당회장 일과로 담당하는 목회는 담임교회가 그리스도 신뢰가 깊어져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만을 최고가치로 알고 그것에 의지해서, 나중에 자기 믿음의 열매를 들고 하나님 앞에서 셈을 잘 치를 수 있는 사람들로 키우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교회 당회장으로서 담임목사는 가교 역할이다. 때로는 믿음의 아버지로, 때로는 믿음의 스승으로, 또 때로는 믿음길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믿음길을 밝혀주는 등대지기로 가교한다.

 

    나는 정말 이렇게 목회가 될 걸로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신학교 졸업 후 10년 넘게 상실에 걸렸다. 신학생일 때는 큰교회 전도사로 나가는 동기들이 부러웠고, 또한 부목사로 청빙받아가는 소식들에도 괜히 시무룩했다. 점점 신학교 때 배운 개혁주의 내용이 내 신학사상이 되는 것도 싫어졌다. 이딴 것에 신앙자존심을 걸거나 목회철학중심으로 삼는, 내 자신이 싫었다. 특히 이걸로 목회 못 한다거나 안 된다고 비난받을 때, 그냥 입을 닫았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을 들추어 복습하고, 자세히 알고싶은 교리들을 찾아 공부해갔다. 그렇다고 10년간 그렇게만 지낸 건 아니다. 마음의 낙담과 육체의 저하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부러 테니스도 쳤고 수영도 배웠다. 별지로 글공부도 좀 했다. 글쓰는 법, 글고치는 법, 국어문법. 이게 쌓이다보니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원2급, 통합논술자격증이 쥐어졌다. 그 덕에 총회공과도 1년 해보았고, 안산푸른교회 아카데미대안학교에서 논술도 가르쳐보았다.

 

    위에서 나는 목회를 둘로 나눴다. 교회 안에서 당회장 & 교회 밖에서 목사품위. 2012년 강원도 동해시 <동해참빛교회>로 청빙받아왔다. 2년간은 남들이 하는 여러 일을 시도해보려고 목회정보를 모았다. 내 일이 아니었나 보다. 2년 넘길 때쯤 동해시평생교육프로그램 수강에서 강사와 질의응답을 주고받던 중 그 강사가 나를 눈여겨보고 동해시립도서관 관장에게 ‘중고등학생 논술 재능기부 강사’로 소개해줬다. 2013년 겨울방학 때 동해시립발한도서관에서 그걸 했다.

 

    이 재능기부가 계기가 되었을까? 2014년에 묵호동20통 마을통장이 되었다. 마을동네를 할일없이 지나다니는 나를 마을반장 한분이 좋게 보았는지 마을통장으로 추천해주었다. 마을통장은 마을이장과 같다. 처음엔 통장이 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해보란다. 여러 나이든 후보를 제치고 통장이 되어버렸다. 통장은 2년마다 재선출한다. 2018년에 재위촉되었다.

 

    그런데 올해 2019년에는 묵호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인을 향한 인문학을 덜컥 강의하게 되었다. 2월 수강신청에 따라 강의 여부가 판가름되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노인 인문학, 나이듦’에 대해 강의준비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글은 교회 밖에서는 지교회 얼굴이면서 기독교인인 목사가 이런 대외활동도 목회범위에 넣어도 될지 않을까 해서 적어나갔다. 재능기부, 통장, 인문학강사 들이 마냥 좋은 봉사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아무리 좋아도 당근(달콤)과 채찍(시큼)은 함께 다닌다.

 

    교회 밖에서 하는 이 일들이 목회로써 전도의 방편일까?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동해참빛교회 목사로서 교회 밖 사람들에게 ‘주제넘게도’ 목사는 좀 다르다는 것, 바다 염도 3.5%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둡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나이 높낮이나 직분 고하를 떠나 가정에서 부모이거나 사회에서 구성원으로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의를 갖추었다. 또 듣기는 많이 하고 말은 아꼈고, 논쟁이 될만한 질문은 미소지었다. 항상? 아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조소하겠다. 다만 좀 괜찮은 목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면 되겠다, 싶은 것이다. 마을통장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인사한다. 교회목사일 땐 지나가도 인사 안 했다. 통장이 되면 봉투를 낼 경우가 있다. 일부 거절한다. 돈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비위맞추는 뇌물 같아서 그랬다. 때로는 기분좋게 내는 봉투도 있더라.

 

    내 목회를, 내 신앙자존심과 목회철학중심을, 글쎄, 교회 안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품위와 품격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말했다. 자기 아내(가정)를 돌보고, 자기 손으로 일할 직업을 갖고, 조용히 미니멀라이프하게 살며, 기독교인으로서 품위와 품격을 갖추길 늘 힘쓰고, 주변에 가난해서 고통당하는 이웃이 없게 도와주라고. 이 정도가 좋겠다 싶다.

 

    교회 안에서의 목회는 저 말고도 많은 목회자들이 잘하고 있다. 짧게 말하자면, 동해참빛교회에게 이리 부탁했다. 담임목사에게 많은 심부름과 다양한 부탁을 요구하지 말라고. 또 하나, 집, 직장, 마을에서 욕먹지 않을 정도의 살짝 멋진 동해참빛교회가 되라고 말이다. 담임목사인 저는 설교로 여러분의 신자됨 권리와 의무를 가르치고, 성찬으로 새생명을 살찌우는 주님밥상 차려주고, 성령하나님과 말씀으로 잘 소통할 수 있게 해주고, 교회가 언제나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이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위로의 집이 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이게 되겠는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교회 가면 쓸쓸하고 힘들다. 그래도 이게 내 본분이요 사명으로 알고 오늘도 그렇게 산다. 아마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