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이야기

[Vol. 34-2] "위주동역(爲主同役)" -공적 책임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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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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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총장, 설교학

 

    매년 5월이면 합신에는 특별한 일들이 전개되곤 합니다. 스승의 달을 내세워 총동문회를 비롯하여 여러 동문기수들이 모교의 스승들을 초대하거나 학교로 찾아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은퇴한 스승들과 현직교수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재학생들은 정복을 차려입고 강당과 강의실에서 하루 종일 “스승의 은혜”를 노래하며 교수들에게 감사의 진심을 표현합니다. 합신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스승의 대접을 과분하게 받고 6월이 되면 나는 늘 나의 선생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윤선 선생님입니다. 이분은 나의 선생님일 뿐 아니라, 합신 모두의 선생님이고, 나아가 한국교회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그 어른 돌아가신 것이 6월이어서 해마다 이때가 되면 그리움과 감사함으로 선생님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그리고 그 어른처럼 살아봐야 할 텐데, 그 선생님에게 보답이 되게 살아야 할텐데 하는 소원을 품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합신은 그 어른의 정신과 가르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합니다.

 

   합신은 그 역사나 규모나 교세에 비하여 과분한 신뢰와 기대를 이 나라 교계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렇게 멋있게 자란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합신은 매우 중요한 시대적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작은 무리일 뿐인 우리를 이 나라 변두리에서 말없이 키우셔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는가?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 한 복판에 이 작은 무리가 정통 개혁주의 신학운동의 선봉에 선 그룹으로, 그리고 바르게 신학하고 바르게 교회를 세우고 바르게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신뢰와 기대를 받으며 부각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이 시대 교회에 공적인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수행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합신은 이 시대와 이 나라 교회에 대하여 역할을 감당 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 자신의 개혁”을 통하여 이룬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제는 한국교회를 향한 “공적인 책임”을 걸머지는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합신은 지금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선결문제가 있습니다.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오로지 붙잡고 힘써온 지침은 나 자신의 개혁과 바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상관 말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서, 내가 옳다고 믿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그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부패한 지난 시대에서 홀로 나 자신을 지키며 다른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합신인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지금까지의 모습에 머물러 살게 하시려고 그 정신을 갖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으로 여기까지 키워서 이제 한국교회 역사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사용하시려고 하신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시점입니다. 공적인 책임을 걸머지고 새로운 역사로의 부르심에 부응하는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시대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고 협력하고 연합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각 개인이 “우리”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인내하고 양보하고 서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주님이 주신 공동의 가치를 위하여 공동체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우리 선생님의 정신과 가르침은 아마도 그 어른이 그렇게 애호하시던 몇 개의 사자성어로 요약될 듯합니다. 침묵정진(沈默精進), 기도일관(祈禱一貫), 여주동행(與主同行), 그리고 지사충성(至死忠誠)입니다.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형성된 합신의 정체성은 이러한 정신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위대한 정신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과 나 자신의 관계, 곧 나 자신의 경건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정신에 따라 누가 뭐라고 해도 바른 길을 가고, 그 길이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옳으면 그것을 꿋꿋하게 실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 자신의 개혁과 바름이 우리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어깨인 셈이고 우리는 선생님 덕분에 이 어깨 위에 올라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선생님의 어깨를 딛고 서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기대 받고 신뢰받는 무리가 되었으니 이제는 더불어 공적인 안목과 책임감을 이루기 위하여 뭉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선생님처럼 굳이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위주동역(僞主同役)”. 주를 위하여 뭉쳐서 함께 일하자는 것입니다. 나 개인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 뿐 아니라, 우리가 서로 주님을 위한 동역자로 살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점들을 배척과 분리가 아니라 용납과 포용과 기대에 찬 인내로 받아들이며 함께 일을 이루어가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박윤선 선생님의 정신과 가르침을 이제 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어깨에 올라서서 선생님보다 더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선생님에게 보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의 신학적 입장이나 나의 신앙관과 다르면 나는 나대로 가면된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일에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음을 인식하고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더 급한 일과 덜 급한 일, 본질적인 문제와 부수적인 문제를 구별하면서 양보하고 인내하고 연합하면서 함께 일을 이루어가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어느 분의 말대로 최소한 합신인들은 만나면 서로 다른 점이나 틀린 점을 찾기 전에 먼저 반가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생님은 분리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우리라도 바른 길을 가자고 외치셔서 여기까지 이루어내었으니 그 실력을 근거로 이제는 타협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라도 한국교회 안에서 같은 신학, 같은 목적, 그리고 같은 책임을 걸머진 우리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시도하여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함께 이루어가는 일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위주동역(僞主同役)”, 그것이 우리가 이제부터 힘써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