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이야기

[Vol. 35-1] 살아온 길, 살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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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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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총장, 설교학

 

    늘 마음에 부담으로 있었던 학교 뒷산 박윤선 목사님의 묘소 주변을 정비하였습니다. 산책로 내려오는 길을 시원하고 넓게 만들어 매트를 깔았습니다. 묘소 주변을 평탄하게 고르고 나무 울타리도 만들었습니다. 오며가며 둘러앉아 담소도 나누고 기도도 할 수 있게 터를 만들고 벤치도 하나 놓았습니다. 그 길과 주변을 돌아보니 새삼스럽게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묘비에 새겨진 말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박 목사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다고 소문으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곳에서 이 말씀을 쳐다보면 생전의 그 어른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금년이면 합신이 첫 발걸음을 시작한 지 40주년이 됩니다. 요란스럽게 행사를 하고 감동적인 축제를 여는 것보다는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이 시대 교회에 대한 책임을 다짐해보는 것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신으로서 우리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것은 단순히 비전이라는 명분으로 소망사항 가득한 장밋빛 꿈을 품어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살아온 길을 분별하면 과거가 현재로 이어집니다. 살고 있는 시대를 분별하면 현재가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줄로 잇대어지게 됩니다.
 
    시대를 분별하는 것은 지도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시대를 분별하는 지도자가 없는 세대는 결국 망하게 됩니다. 그 시대를 사는 절대다수의 민중은 시대분별 같은 것에 관심 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을 살아갑니다. 구약 사사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시대를 분별하는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자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상대가 되어 새 시대를 펼쳐갈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이어진 것이 여호수아 시대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자 새 시대를 이어갈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찾아가시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자기들이 제시한 의제를 갖고 하나님을 찾아가서 묻는 말에 답하라는 식으로 단답식 질문을 하는 것이 그 시대 역사의 첫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개된 것은 사사시대였습니다. 사사들은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적군을 물리쳐서 고통당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쟁영웅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영웅적 승리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수준이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늘 똑같거나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시대를 분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시대적 징조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민감한 영적감각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처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민첩한 순종입니다. 결국 시대를 분별한다는 것은 시대에 대한 판단과 처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그 판단과 처신의 절대적인 기준과 근거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이시며, 그것은 반드시 드러나야만 하고,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사회는 “초갈등사회”라는 두렵고도 절망적인 한 단어로 요약이 될 만큼 편 가르기와 사생결단의 분노에 찬 대립이 일상의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점점 교회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성도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라면, 자신의 개인적 이해타산이나 혹은 자신의 정치성향이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내세워 처신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우리 편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 외의 모든 세상도 심지어 천사들도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심판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성도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역정을 내며 매우 특이하게 설명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이 너희에게 심판을 받을 것인데, 너희가 지극히 작은 사건 하나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냐?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하물며 이 세상일들은 어떻겠느냐?”(고전 6:2,3). 우리는 세상을 심판할 사람들이고, 심지어 천사들을 심판할 자들로 불림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영적 지도자라 불리는 목회자들이 온라인에서 정치적 입장 때문에 패가 갈려 분노에 찬 막말댓글로 서로 대립하는 모습은 영적 지도자의 품격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여 이 시대가 살아갈 길을 제시하는 거룩한 책임을 감당하기에 몰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단에 백번을 올라 비티고 서서 큰 소리쳐도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