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신학

[Vol. 34-1] 차별금지의 기독론적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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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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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우 교수, 신약신학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차별이 있다. 이러한 차별은 초대교회에도 상존했다. 야고보서를 받는 교회의 신자들도 사람을 차별하여 대했다. “내 형제들아 …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 특히 그들은 부자를 존중한 반면에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약 2:2-3) 업신여겼다(약 2:6). 이러한 차별대우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왕의 법(νόμος βασιλικός, 약 2:8 최고의 법)을 범하여 죄를 짓는 행위이다.

 

    ‘차별’(προσωπολημψία, 약 2:1)은 ‘얼굴’(πρόσωπον)과 ‘취하다’, ‘붙들다’, ‘받다’, ‘영접하다’(λαμβάνειν)의 합성어이다. ‘차별하여 대하다’는 얼굴을 취한다는 말로서 사람을 외모와 보이는 것으로 취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한 곳이 갈라디아서 2:6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πρόσωπον ὁ θεὸς ἀνθρώπου οὐ λαμβάνει).” 따라서 차별하여 대하는 것은 얼굴이나 외모로 취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충돌한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성품(약 2:1),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과 법(약 2:5-13)에 근거하여 차별대우를 금한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성품에 근거한 차별금지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고 명령한다. 이 말을 직역하면 “나의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외모로 취하는 것들과 함께 가지지 말라”이다. 신자는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를 함께 소유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이 주님이시므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하여 차별하면 안 된다. “주 곧 우리 주”(1). 주님은 모든 존재의 주인이시다. 주님은 모든 좋은 것을 주시며(약 1:7, 12, 17; 5:18), 사람을 높이기도 하시고(약 4:10) 살리기도 하신다(약 4:15). 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높이시며 그들에게 영원한 것을 주신다. 그분만이 판단하시므로(약 5;9)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여 차별할 어떤 권한도 없다.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

 

   둘째, 예수님은 주님이시되, ‘우리의’(ἡμῶν) 주님이시므로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 “우리의 주”(1). 야고보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 아닌 ‘우리의’ 주님이라고 말한다. 모든 신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한 몸을 이룬 지체들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주님의 몸을 해치는 범죄행위이다. 눈이 귀를 차별하거나 손이 발을 차별하면 몸이 온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신자가 서로 지체이므로 차별하여 대하면 몸인 교회가 온전히 서지 못한다. 신자는 당장 차별대우를 멈추어야 한다.

 

    셋째,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차별대우를 멈추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1).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구원자이시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구원은 사람의 외모나 소유에 근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와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신분과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은혜로 선택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약 2:5). 예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선택하시며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며, 차별이 없다(롬 3:22). 이런 까닭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모든 신자도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안 된다.

 

    넷째,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영광의 주”(1). 주님은 영광스러운 신적 성품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이 영광스러움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데서 잘 드러난다. 신자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믿는 자이다. 따라서 신자는 삶과 인격과 성품에서 영광스러운 주님의 성품을 실현하며 그 광채를 발산해야 한다. 신자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신적 성품을 증거해야 한다.
결국 신자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세상의 윤리 도덕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신분과 성품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주이시자 우리의 주님이시며, 차별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다. 신자와 교회의 차별금지는 인본윤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신분과 성품에 기반을 둔 기독교 윤리이다.

 

    이어서 야고보는 사람을 외모로 취한 차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너희가 너희들 안에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너희가 악한 생각들의 판단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냐?”(약 2:4). 이 질문은 이미 “예”라는 긍정의 답을 전제로 한 것이며 강조를 위해 명백한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질문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차별하면 서로 분열하게 되고 악한 생각을 가진 판단자가 된다. 사람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일은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려 분열을 일으킨다. 이 사람은 주님의 주권과 판단을 무시하는 심판자가 되며, 자신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성품을 가진 자가 아니라 악한 성품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신자는 예수님의 신분과 성품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안 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차별은 주님의 주권과 판단을 무시하고, 구원의 은혜를 저버리며,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려 분열을 일으키는 범죄행위다. 한국교회에는 여전히 출신 지역과 출신학교와 혈연에 의한 차별이 만연하다. 우리는 이 모든 차별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성품에 따른 기독교 윤리를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