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실천

[Vol. 34-1] 교회와 국가의 관계(-역사적 정황 속에서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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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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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혁 교수, 역사신학

 

 

    필자는 17세기 루더포드-후커의 교회론 논쟁을 연구하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교회론 논쟁이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이들의 시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17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대변했던 사무엘 루더포드는 국가교회의 정당성을 옹호한 반면, 뉴잉글랜드 개혁파 전통의 회중교회를 주창했던 토마스 후커는 그러한 국가교회로서의 장로교주의는 성경적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교회가 아직 유아 단계에 있을 때, 일시적으로 국가교회를 인정하셨으나 신약시대에는 보다 성숙한 형태의 회중교회가 국가교회를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이 후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단 정교일치가 제도화되는 것을 거절한 후에, 후커는 교회가 국가로부터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세속관료는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바른 예배와 치리가 이루어지도록 돕고, 필요하다면 나태해지는 교회를 질책할 책임까지 있다고 후커는 주장했다. 후커의 입장은 뉴잉글랜드『케임브리지 플랫폼』(1649)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플랫폼』은 두 왕국론의 입장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천명한다(17:5). 세속 관료는 시민에게 교회회원이 되도록 강제하거나 수찬 정지권을 행사할 권세가 없다(17:4).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교회에 대한 세속 관료의 의무를 강조한다. 특히 십계명의 두 번째 돌 판 뿐만 아니라 첫 번째 돌 판에 대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 것이 인상적이다.

 

    한편 후커와 반대 입장을 취했던 루더포드에게서도 비슷한 양상이 관찰된다. 일단 국가교회를 옹호한 후에 루더포드는 국가와 교회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구분 짓는 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교회의 치리권을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에라스투스주의를 논박하면서 루더포드는 두 왕국론의 입장에서 교회가 행사하는 영적인 치리권을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애썼다. 루더포드는 교회 안의 치리 원리가 세속사회의 그것과는 본질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루더포든 『법과 국왕』에서 설파한 국민재권의 민주적 원리를 교회 안으로 도입하여 장로교회의 치리 원리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국가-교회의 관계에 관한 루더포드와 후커의 입장은 각자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잘 이해될 수 있다. 루더포드가 대변했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또 다른 국가교회의 형태를 취했던 영국 국교회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은 그로 하여금 국가교회의 큰 틀 안에서 국가와 교회의 고유한 독립성을 부각시킬 필요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한편 후커의 역사적 정황은 사뭇 달랐다. 초기 뉴잉글랜드의 주요 식민지 관료들은 많은 경우 회중교회와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했다. 일례로 존 윈스럽과 같은 신앙인을 후커는 세속 관료의 모델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후커가 옹호한 국민의 “근원적 권력”은 회중교회의 치리원리인 회중의 “근원적 권력” 논의와 큰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요컨대 로마 가톨릭교회와 영국 국교회를 대변하는 세속 정부를 대항하여 투쟁해야만 했던 스코틀랜드 교회의 두 왕국론은 교회의 독립성을 방어하는 원리로 주로 활용되었다면, 같은 시기 뉴잉글랜드에서의 두 왕국론은 교회와 식민정부의 밀착관계를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두 왕국론과 정교분리의 원리를 역사적 정황 속에서 이해할 필요성은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시정부가 교회의 치리에 관여하는 문제에 대해 츠빙글리-불링거의 취리히는 칼빈의 제네바보다 허용적이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3장 3절에서 정부관리가 교회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 역시 웨스트민스터 회의가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수행한 의회에 의해 소집된 교회 회의였다는 역사적 정황 속에서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현대 교회에게도 여전히 미묘하고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성경과 신앙고백의 전통에 충실해야만 한다. 그런데 후자와 관련하여, 많은 신앙고백서들이 특정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 작성된 역사적 문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한 항목들을 연구하고 적용점을 모색할 때, 우리는 과거의 역사는 정황은 물론 오늘 우리 시대의 정황적 요소들을 보다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